Tuesday, March 29, 2011

사순절

사순절 기간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의 의미를 일상의 삶 속에서 드러내는 기간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때 예수님 곁을 떠났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고난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령, 소외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나 재물을 기꺼이 내어 주고 있는가?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있어주었는가? 그런 기회가 실제로 왔을 때 고개를 돌리고 외면한 적은 없는가?

이천년 전 십자가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학대받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주려할 때 만나게 되는 사장의 폭언이 될 수도 있고, 관공서의 관료주의나 무시가 될 수도 있고, 반이주진영의 원색적인 비난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소외계층을 돌보고자 할 때 예상외로 접하게 되는 교회의 무관심이 될 수도 있고, 그런 힘든 일 하지 않고 다른 집 아들 딸들 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을 사교육에서 해방시키고자 할 때 마주치는 주변의 염려와 자녀의 장래에 대한 현실적 불안은 또한 어떠한가. 사업을 하면서 거짓과 속임수를 쓰지 않을 때 얻게되는 경제적 손실과 이로 인한 저조한 실적, 사회적 저평가는 또한 어떠한가.
우리는 정녕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순절 기간 중에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 내 삶으로 응답해왔는지에 대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그들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응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응답은 희생적인 삶의 모습이었고,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그 희생과 고난 속에서 기쁨을 맛보았다. 그 기쁨은 그리스도에게 받은 은혜를 이웃들에게 베푸는데서 오는 기쁨이었고,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 그들의 삶에 구현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비록 그 과정 중에 세상 권세로부터의 핍박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세상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 권세를 무력화 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에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무력과 폭력으로 반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한 모습을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현재라고 다를바 없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의 힘으로 기독교적 가르침을 억압하고 있고, 크리스천들은 이천년전 십자가 사건 이전의 제자들이 그랬듯 고통의 현장에서 도망치기 급급하다.  부활 경험 후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삶으로 돌아간 초기 제자들보다 못한 지금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십자가는 커녕 자기 삶의 영역에 그 어떤 십자가적 내용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십자가 방지' 영역이 된지 오래다.

어쩌겠는가.. 이번 사순절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 삶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십자가 방지 보호막을 깨뜨리길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우리들의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고 짊어질 때, 그 때에만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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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