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19, 2025

뉴질랜드 성공회와 어번 비전

영국 성공회의 수장은 켄터베리 대주교가 아니라 영국 국왕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왕이 교회의 수장으로 있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침례교 출신인 나로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행히도 뉴질랜드 성공회는 세계 성공회의 일원이긴 하지만 영국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관구이다. 특히 뉴질랜드 성공회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대주교 세 명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세 명의 대주교는 각각 파키하(유럽계), 마오리, 퍼시피카(폴리네시안) 그룹을 대표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곳 성공회 예배에 참여하면 백인 교인들이 대다수임에도 마오리어를 꽤 많이 들을 수 있다. 리터지에도 마오리어가 많이 사용되고 마오리 찬양도 많이 부르고 있다. 사제들은 특히 마오리어 공부를 많이 해서 예배에서 사용되는 마오리어는 꽤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세 명의 대주교 중 한 명인 파키하 대주교의 딸과 사위가 담임 사제로 있다. 우리 부부와는 목회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유쾌하고 명랑한 사제 부부다. 둘 다 아버지/장인의 영향을 받아서 아버지가 빈민가에서 시작한 Urban Vision이라는 단체의 사역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어번 비전은 수도원의 영성과 공동체성을 도시 내부에서 사회 주변부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이다. 그 아버지는 대주교가 된 지금도 맨발에 허름한 옷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집에서 자기 가족들만 살아본 적이 없고 항상 누군가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어번 비전 사역에 동참하는 코어 그룹들은 한 집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살면서 수도원처럼 공동체 내의 모든 걸 공유한다. 개인 소득의 상당 부분이나 전부를 공동 계좌에 넣고 그걸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충당한다. 청빈한 삶을 살기 때문에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고 절약한 돈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쓰고 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약자, 소외된 자와 함께 계신다는 대답을 찾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내려가 예수님과 함께 일한다는 정신이 그 단체에 담겨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 성공회가 이렇게 평생을 빈민 운동에 헌신하고 지금도 그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을 대주교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 교회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성공회 역시 교인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교회당이 문을 닫고 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도 사람들이 얼마 없다. 어번 비전도 30년이 되어가지만 참여 인원이 많지 않다. 이 지점에서 내가 아직까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물음과 또 마주치게 된다. 교회가 예수 정신에 입각하여 제대로 사역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고 교인들 조차도 예수나 예수적 삶에 관심이 없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 말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