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4, 2025

비폭력저항

악에 저항하는 방식 중에 폭력을 써서 저항하는 방식과 폭력을 쓰지 않는 비폭력저항의 방식이 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대부분 비폭력저항의 노선을 따르려고 할 것이다. 나 역시도 비폭력저항을 악에 대한 저항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폭력은 무조건 안된다는 입장에서부터 어느 정도의 폭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정당방위도 안되는가? 적의 의지를 꺽어 놓을 정도로만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안되는가?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는 것도 안되는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 따라 비폭력저항에서 폭력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엊그제 교회에서 이 나라 비폭력저항의 최초 사례라고 여겨지는 파리하카 지역에서 있었던 저항운동(1881년 11월 5일)을 기념하는 예식이 있었다. 1870년대 후반 당시 식민 정부가 파리하카 지역의 토지를 몰수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비폭력저항을 고수했었던 그 지역 마오리인들의 정신을 기리는 예식이었다. 비폭력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간디의 남아공 저항보다 약 25년 정도 앞서서 있었던 운동이었기 때문에 비폭력저항의 역사에서는 꽤 유명한 저항 사례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마하트마 간디 재단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재단의 후손 및 대표자들이 이 곳을 방문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비폭력저항을 기본값으로 지정해 두고는 있지만 비폭력저항의 실패 사례가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저항 상대가 무자비할 경우 그 피해는 너무나 끔찍하다. 한국의 3.1 운동이나 중국의 천안문 시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는가. 파나마나 케냐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있었고. 파리하카의 경우 영국 식민 정부가 그나마 양심이 있는 정부여서 발포를 안했던 것이지, 만약 그 정부가 천안문 시위 당시의 중국이나 삼일운동시 일본 식민정부였다면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을 것이다. 파리하카의 경우도 당시에만 사상자가 없었을 뿐 그 시위 직후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고 재판도 없이 남섬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지고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는 등 많은 피해가 있었다.  

비폭력저항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도부가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야 하고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야 하고 전세계 언론에게 호소도 해야 한다. 단순한 거리 시위보다는 정부에 대한 비협조 전술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알린스키처럼 기발한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도 좋은 예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때로는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요청하기도 하지 않았나. 

설교자가 비폭력저항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얘기들만 늘어놓고 끝나는 바람에 좀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여기에라도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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