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결혼을 하고 200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외할머니에게 좋은 옷을 사드렸던 적이 있었나보다. 나는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할머니가 그 옷을 외손주가 사준 옷이라고 지금까지 아껴 입으시면서 잘 보관하고 계셨다고 알려 주셨다. 20년이 지난 옷이 아직도 상태가 좋아서 외할머니와 사이즈가 비슷한 작은 이모가 입기로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 지난 주에 향년 102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친할머니가 살아계셨던 유년 시절에는 외할머니와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아마도 내 나이 여덟 살 때쯤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나서부터는 외가쪽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냈던 듯 하다.
외할머니는 말수가 적으셨다. 백년을 넘게 사시면서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 시대를 모두 겪으셨으니 아마도 말수가 많으신 분이었다면 그 시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테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에서 몇 년간 사셨다는 게 전부다. 얼마전 파친코라는 책을 읽고 드라마도 봤었는데 외할머니도 그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셨던거다.
내가 외할머니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때는 대학 시절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했었을 때다. 그 때 서울에 살고 계셨던 큰 외삼촌 댁에 얹혀 살면서 외할머니와 한방을 썼었다. 집에 외숙모가 안계실 때는 내 밥도 자주 차려주셨다. 작게 부쳐내던 김치전이 단골 메뉴 중에 하나였는데 지금도 그 전의 모양과 맛이 기억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용돈을 몇번 드리려고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용돈을 받지 않으시고 나에게 용돈을 주시기만 했다. 아마도 가난하게 목회하시는 우리 부모님 생각에 그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할머니는 평생 마른 체형에 큰 병치레를 하지 않으셨다. 청력만 좀 안좋아지셨지 시력도 좋으셨고 백 살이 넘어서도 텃밭을 일구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으셨다. 오래 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들을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시골 할머니로 사셨는데도 이렇게 장수를 하셨다. 그래도 나이를 이길 수는 없으셨는지 얼마전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시고 며칠 만에 돌아가셨다.
외국에 있어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외할머니와 나는 이별을 했다. 외가쪽으로 세 분의 외삼촌과 네 분의 이모들이 계시고 다들 결혼하셔서 20 명의 외손주와 또 20명 쯤 될 증손주들이 있으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 방에서 같이 지냈던 외손주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셨더라면 좋으셨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