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18, 2010

에스더기 읽기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 유대인들은 소수지만 눈에 띄고, 약하고, 주변의 몇몇이 싫어하지만 그들 일부의 재능과 성실함에 의해 번영을 누린다그들은 기꺼이 서로 위험을 감수하며, 최고 권력층으로부터 보호를 얻어내는 기술과, 사건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가는 능력을 통해 생존해 나간다.
에스더기에도 패턴이 등장한다그런데 에스더기에서 유대인은 하나님, 율법, 종교성과 관련이 없이 단순히 민족으로만 묘사된다. 에스더는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결혼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으며 유대인의 종교 관습을 비밀리에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모르드개의 금식, 베옷, 재는 회개의 상징이지만 책에서는 죄에 대한 언급이 없고 회개의 요청도 없으며  유대인을 말살하라는 왕의 조서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극한 슬픔의 표현일 뿐이다.
금식은 보통 기도와 연결되지만 모르드개나 유대인들 아무도 살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요청을 하지 않는다비슷한 사건으로 천년 이집트에서 남아 살해 명령이 있었을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셨다하지만 에스더기에서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아무도 그걸 기대하지도 않는다그들은 단지 그들의 용기와 능력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모르드개는 심지어 에스더에게 네가 그자리에 오르게 것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냐'고 얘기한다. 영어성경에 Who knows?라고 표현되어있다(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다. 하나님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그들의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는 주제도 나타나지 않는다
유대와 유대인이라는 표현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인이라는 국가적 표현을 대체한다포로기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까지만 해도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인이라는 말이 국가를 의미했다. 유대는 12 부족 중에 부족에 불과했지만 단어가 이제 유대라는 새로운 국가를 의미한다.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인가? 새로운 국가는 하나님을 필요치 않는 국가인가?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그들의 계획을 믿고 실행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다.
부림절은 에스더가 쓰여지기 전에 이미 바벨론의 축제로부터 영향을 받은 일종의 유대 주신제로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책에 등장시키지 않은 이유가 이해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책에서 빼는 것이 오히려 신성한 분의 이름이 술과 방탕의 축제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이다. 너무 착한 해석인가 ㅋㅋ
-잭 마일스의 책을 읽고 짧게 내용 요약하며 내 생각 약간 덧붙인 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 생각인지 나도 모름. 워낙 오래전에 쓴 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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