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6, 2014

하나님나라와 부활 그리고 십자가

나는 한국 사람이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하나님나라 사람이기도 하다. 하나님나라 사람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이 아직 하나님나라가 아니지만, 하나님나라 사람으로서 하나님나라의 말을 하고, 하나님나라의 음식을 먹고, 하나님나라의 풍속을 따르려고 한다. 마치 내가 뉴질랜드 땅에 살면서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풍속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는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잘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모습은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예수님의 행동과 가르침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나라를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그 나라가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 일은 나 혼자만의 행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와 타자를 포함한 우리의 힘으로, 그리고 이 '우리'를 가능케하시는 성령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어찌 나와 타자가 함께 우리가 되겠는가.    

혹자는 말한다.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힘으로 이 땅위에 만들어질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 그 나라가 어찌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만약 그리 된다면 그 나라는 또 다시 인간의 나라가 될터이지 어찌 하나님의 나라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 나라의 완성이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할지라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 길의 끝에 절망이 있을 것이고 고통과 좌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그 절망을 맛보아야 한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 그 절망의 자리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부활도 가능하고 그래야 하나님나라도 열리는 법이다.

부활은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에게나 의미가 있는 법이다. 누군가 부활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가능하니 불가능하니를 따지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십자가를 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자가, 단순한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고통받고 소외당한 자들을 구하려다 다다르게 된 고통과 절망의 자리이다. 그 곳에 이르지 못한 자들에게 부활은 헛소리에 불과하겠지만, 하나님마저 나를 버린 것 같은 절망의 자리에 다다른 자들에게 부활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유일한 증거, 정의가 살아있고, 우리에게 희망이 아직 남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이다.

부활은 탁상머리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믿느니 마느니 기껏 belief 수준에서 만지작 거릴 개념이 아니다. 부활은 우리가 십자가의 길로 들어섰을 때, 오직 그 때에만, 그 길의 끝에서 새롭게 열리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인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예수님이 들어선 그 나라, 하나님나라, 우리의 영원한 희망, 이 땅에 없기에 그 어느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래서 영원한, 그 희망을 얻고 싶다면 십자가를 져보라.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같이 어깨를 걸어보라. 맞아터지고 협박도 받고 체제의 공고한 힘에 억눌려도 보라. 그러면 그 숨도 쉴 수 없을 답답함 속에서 부활도 하나님나라도 기꺼이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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