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구원자를,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자기를 건져내줄 사람을 원한다.
병자는 자기를 치료해 줄 사람을,
가난한 자는 부요하게 해 줄 사람을,
억눌린 자는 자유롭게 해 줄 사람을,
죄인은 죄를 사해줄 사람을 원한다.
물론 간혹 자기가 자신의 그리스도(구원자)가 될 수 있음을 자처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스스로 자기가 자신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을 때까지 도와주고 기다릴 뿐이다.
반면 어떤 연유로든 자기가 자신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 내가 있다.
나는 다른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러하듯 2000년 전 유대지역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던 한 인물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선포한다.
나는 왜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고백하는가?
왜 다른 사람은 안되고 예수님인가?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내 구원자인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땅과 성전을 돌려줄 구원자를 원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예수는 그들에게 땅과 성전을 돌려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로마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했기에 그들의 메시아/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이렇게 전통적 관점에서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그가, 로마에 의해 당대 최고형인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그가, 구원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전부 미친 사람들이었는가?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했을 때 그분이 메시아라는 희망을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부활이라는, 당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최후의 날에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리라 믿었던, 종말론적 현상이 예수라는 개인에게 일어났음을 경험하고 태도를 바꾸었다.
그 부활 사건 이후로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속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보았으며,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보았다.
또한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왔던 정형화된 독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그들의 경전(구약)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유대 민족주의를 벗어난 구속사가 전개되었다. 이방인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제 삶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차별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랬다.
나는 어떤가?
나에게도 부활이 의미가 있는가?
부활은 필연적으로 새창조를 요구한다.
부활이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존재 양식이라면 그러한 존재 양식이 살아야 할 시공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계시록이 그리는 새하늘과 새땅은 그러므로 새창조의 관점에서 옳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는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 먼 훗날의 이야기가 현재의 나에게 실제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활은 개인의 의식 차원에서 본다면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죽는 순간부터 부활하는 순간까지 내가 의식하는 실제 시간은 순간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신마취 후 깨어나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는지 당사자는 의식하지 못한다.
당사자에게는 전신마취 전과 깨어난 후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죽고 내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간 경험을 할 것이기에
역시 내 의식 속에서 부활까지의 시간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부활은 먼 미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과 관련이 있다.
내 죽음은 40년 후가 될수도, 10년 후가 될수도, 아니면 오늘이 될수도 있다.
마지막 눈을 감고 뜨면 부활인 것이다.
부활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 해도
이 일을 개인이 영생을 얻는 수준으로만 이해한다면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부활을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 진입 사건으로 본다면 상당한 의미로 다가온다.
부활을 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만 나에게 의미가 있다.
내가 부활을 소망한다는 것은 내 개인의 영생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는 말이다.
나 혼자만 살아나는 것이 아닌 온 세상이 하나님의 새창조로 말미암아
배고픔과 아픔과 미움과 전쟁과... 죄악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그 꿈을 내 마음에, 내 몸에, 이 땅에 실현시키며 살다가 죽는 것이다.
그런데 죽음이 끝이 아니다. 부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눈을 감고 눈을 뜨면 새 세상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창조의 사건이 앞당겨져서 예수님에게서 먼저 일어났다.
나와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에게서 새 생명의 비전을 본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셨다.
저항 세력은 죽이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예수님은 죽음이 끝이 아님을 보여주셨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아니 죽임을 당한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죽음을 최고의 무기로 사용했던 권세자들에게 이는 심판의 메시지이다.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죽일테면 죽여봐라.
부활 신앙 앞에서 어떤 자가 악을 행할 수 있겠는가?
부활 앞에 악은 이미 죽은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생명의 나라가 이 죽음의 나라에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과감하게 부활을 외쳐라.
부활을 통해서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였다.
그렇다.
예수님이 부활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치권력과 유대의 종교 권력에 의해 찢기고 피흘린 예수님이
부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최고의 무기인 죽음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보다 기쁜 승전보가 어디있는가?
이 분외에 그 어느 누가 나의 구원자/그리스도가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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