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8, 2014

518 단상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가 어느날 저녁 매점으로 나를 부르더니 몇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묵사발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 피범벅이 된 임신부의 시체, 온 몸에 피멍이 든 시체 등이 찍힌 사진들이었다. 그 친구는 그 사진들을 당시 대학교에 다니던 형에게서 얻었다며 그 사건이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전해주었다. '이게 정말 사실인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이런 의구심을 털어낼 수 있었던 건 그 후 2년이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얼마전 쯤 우리교회에 휠체어를 탄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그 남자는 양복을 입고 가족과 함께 왔었는데, 외관상 그냥 잘 사는 장애인인가보다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80년 5월의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하반신 불수가 된 518의 희생자였었다. 사진으로만 보고 풍문으로만 들었던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그 분과 친해지게 되고, 그분의 부탁으로 만학도의 삶을 살아가는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차에 옮겨 태우고 하는 일들을 1년간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까지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어떤 세상'의 존재에 대해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세상은 사람들을 힘과 폭력으로 다스리는 세상이었고, 약자와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세상이었으며, 진실을 숨기기 위해 갖은 음모와 술수를 부려대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은 2천년전 예수를 미워했던 바로 그 세상이었으며, 바울 사도가 우리들의 싸움 상대로 지목했던 통치자, 권세자,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 또는 하늘의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억압과 살인과 폭력과 파괴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싸움 대상으로 개인보다는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통제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는 지배 체제, 그 지배 체제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악한 영성을 주목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 지배체제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줄기차게 해왔었다. 사회가 죄인으로 규정한 인간들의 죄를 사해주었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아닌 것을 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죄라는 명목으로 옭아매려는 세력들에 대항하셨다. "내가 한 일이 죄라고? 죄를 덮어씌우려는 너희들의 행위가 오히려 죄 아니냐?""너희들이 죄인으로 규정한 사람들, 하나님나라는 너희들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

518은 체제의 가면이 벗겨진 사건이었다. 그 체제의 영성, 그 사악한 악마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 악마를 쫓아내고 체제를 구원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통해 체제의 민낯을 보게되었고 체제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작업은 아직도 더디게나마 진행 중에 있다. 때로는 이 작업이 과연 성공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사탄의 민낯을 보았으며 그에게 덧씌운 십자가의 저주를 이겨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사탄의 체제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에는 이긴다는 희망이.. 그때까지 우리는 죽을 것이다. 죽고 죽고 또 죽을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고 부활하고 또 부활할 것이다. 죽임과 생명의 대결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이 대결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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