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14, 2014

공허함

3월 중순경 한국에 계시는 장모님이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한국에 들어갔다. 낙상으로 인한 뇌출혈이었는데 뇌손상부위가 커서 의식을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3주간 중환자실에 코마상태로 계시다가 4월 1일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갑자기 60대 후반의 정정하셨던 어머니를 잃은 처가 가족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나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낙상이 일어났던 장소가 병원이었기에 아직 남아있는 인맥을 동원해 변호사들을 소개받고 의료사고 여부를 의논하고 병원에 항의하는 일들을 해야 했고, 밤에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2주 동안 잠을 자며, 장모님을 걱정하시는 장인어른의 마음의 짐을 덜어드려야 했다. 그 와중에 겪어야 했던 심신의 피로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장례를 치르고 다시 뉴질랜드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신학적 물음들이 내 마음을 짖누르고 있다.

어제 참석했던 예배는 참 공허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하며 기도를 드렸다.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했고, 고통받는 이웃들, 자연재해로 인해 신음하는 나라들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런 기도에 가족들의 애타는 기도에도 잠깐의 의식도 회복하지 못하고 거의 시신과 다름없는 상태로 각종 의료장비에 연결된채 돌아가신 장모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가? 하하, 이 질문에 대한 답, 보수신학의 답변과 진보신학의 답변들을 나는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공허한걸까.. 예전에 "그렇지,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그 답변들이 왜 이리 공허한 걸까.. 내 지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내 말들이 왜 나에게는 이런 공허함을 주는 걸까.. 나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에 대해, 사랑에 대해, 기도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 앞에 욥처럼 입닥치고 있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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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늘 소박한 삶을 꿈꿔 왔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해 왔으니, 어찌 보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평생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