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그가 얻길 바라던 어떤 구체적인 것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픈 동생의 병원비를 그만 대고, 원하던 직장에 취직하고, 맘껏 연애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소원들이 희망이라면 아픈 동생이 계속 아프고, 원하던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고, 맘껏 연애할 수 없는 현실은 절망이 된다.
이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기독교의 희망이 하나님 나라라 할 때,
그 하나님 나라라는 희망은 아직은 순수의 영역에 있다.
그래서 안전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구체성의 영역에 놓여져 있다면
그것에 대한 희망도 절망일 때가 많을 것이다.
십자가라는 절망.
그러나
부활도 하나님 나라도 아직은 순수의 영역에 있기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희망 때문에
여타한 소원들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절망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파도 위를 타고 싶다면,
하늘에 희망을 두고 보이지 않는 바람에 의지해도 되지 않겠는가.
(사진은 카이트서핑(kitesurfing)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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