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14, 2016

먹고 난 이후에

내 눈 앞에 당근이 있다고 해봅시다.
내가 그 당근을 먹었을 때 그 당근은 내 몸 속에서 더 이상 내 눈 앞에 있었던 당근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만약 당근이 내 몸 속에 들어와서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나는 그 당근 때문에 죽고 말 것입니다.
내 눈 앞에 있던 당근은 내 몸 속에 들어와서 잘게 부서져서 흔적도 없이 그 모양을 잃어야 합니다.
모양을 잃어버린 당근은 어떤 식으로든 내 몸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남는 것은 '나'이지 '당근'이 아닙니다.
먹어서 그 모양을 잃으면 어떡하냐는 걱정하지 마시고 먹어서 없애시기 바랍니다.
어떤 가르침이든 내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전부 내 안에서 부서져야 합니다.
내 안에 들어온 내용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안됩니다.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사라지며 남겨진 것들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도 그것이 그대로 내 안에 있고 나는 앵무새처럼 그 가르침을 되뇌이고만 있다면 그것 때문에 나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먹고 소화해서 없애버리시기 바랍니다.
남는 건 당근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당근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해봤자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당신의 몸/삶만 보일 뿐입니다.
소화 불량, 변비, 설사, 복통을 안고 사는 당신의 모습 말입니다.
당근 이야기는 먹고 난 이후에,
당근의 모양이 다 사라진 이후에나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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