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21, 2009

사라지는 하나님

성서는 왜 하나님을 점점 사라지게 표현해 놓았을까..
창세기 1장의 그 강력한 하나님 이미지가 왜 점점 사라져가도록 표현해 놓았을까..
먼 신화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강하게 표현되어질 수 있지만
현실로 가까이 올 수록 하나님을 느끼기가 어렵기 때문인가..
먼 옛날 내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쓰는 것은 쉽지만
지금 여기서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인가..
창세기 1장의 그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셨던 하나님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슬슬 성경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겨가시다가 결국 엘리야 이후에는 전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보이지 않으신다.
에스더에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한번도 없을 정도이다(연대기적으로 성경을 배열했을 경우 에스더는 구약 성서중 거의 마지막에 속한다).
똑같이 민족을 어려움에서 구한 요셉의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여러번 언급했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에스더에서 한번도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왜 구약 성서 기자들의 눈에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왕국의 멸망 이후 그들의 눈에 하나님은 이제 묵시록에서나 만날 수 있는 분, 앞으로 다시 오실 분으로만 기대되고 있다.

신약 기자들의 예수님 묘사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들도 물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고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현재성, 즉 성령을 통한 부활하신 예수의 내주하심을 묘사하고 있다.
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비록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언정 생명의 영으로 항상 현재하고 있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신약 기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사라져가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종말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현재 속에서 체험될 수 있는, 또는 매일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구약 기자들의 하나님 이해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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