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27, 2016

탄도

어딘가에서 출발해서 어딘가로 떨어진다.
낙착점은 어디인가.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이제는 관성에 의해 나아가고 있는 중인가..

다큐멘터리에서 힙합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20대의 열정을 힙합에 불태우고 있었다.
일단 그들의 목표가 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와는 별도로 그들의 에너지를 보면서 나의 20대를 떠올려 보았다.
나 역시 내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탄도의 정점만을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정점을 지나친 포탄이 어디로 가야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했을 때 나는 신학 공부를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노력했다. 내 에너지를 쏟았다. 열정이 있었다.
좌절이 있었으나 결국 그걸 넘어설 수 있었고 유학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신학공부를 하는 것까지, 거기까지가 내 목표였다.

그 후로 나는 탄도를 따라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러우나 열정이 없다.
목회는 내가 열정을 쏟고 싶은 분야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그려왔던 탄도의 궤적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

목회에 열정을 쏟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만났던 예수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성서에서 다른 예수를 만났다면 목회에 열정을 쏟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만났던 예수는 조직하고 통제하고 교조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도화된 교회의 궤적을 따라갔더라면 나 역시 목회에 열정을 쏟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궤적을 따르길 거부했다.

나는 내 자신에 솔직해져야 한다.
나는 일반적인 한국 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목회자는 아니다.
교회라는 조직을 관리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애쓰는 목회자가 아니다.
그런 쪽으로 전혀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 쪽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물처럼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가고 싶을 뿐이다.
교회와 교회 밖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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