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4, 2016

구별됨에 관하여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 33:15-16)

가나안 땅에 들어갈 즈음 하나님이 모세에게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과 더는 같이 안간다. 같이 갔다가는 내가 그들을 다 진멸할지도 모른다 (출 33:3)"는 말을 했고 모세는 위와 같은 말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기를 원했다. 이스라엘을 진멸할지도 모르는 하나님인데도 함께 있기를 원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믿음이 모세에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약속에 매여있는 분임을 모세가 확실히 경험했기에 가능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경배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진멸하려 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언급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를 멈추셨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그래서 통제불가능한 무서운 분일 수도 있지만, 인간에게 하신 자신의 약속/말씀에 스스로 매인 분이셨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분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분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것이었기에 복된 약속이었고, 그 약속을 지키는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도 유익한 일일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고 했다. 흔히 우리는 이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분리될 수는 없지만 구별된 사람들. 나중에는 분리가 되겠지만 지금은 이땅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래서 교회는 구별된 삶의 모습들을 정형화하고 그 삶의 모습들을 강요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정형화된 모습들만 넘쳐난다. 

그런데 모세의 기도에서 그 구별됨의 근거는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함께 계심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다른 누구가 아닌 '하나님'으로 우리 안에 거한다는 말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계셔야 우리는 우리의 구별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구별됨은 순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만 우리에게 보여져야 한다. 어떤 환경에 이끌리어 그냥 남들 하는대로 행하는 구별됨이 아니라 실제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인해 보여지는 행동들로 구별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진대 그것이 안되는 이유는 실상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 보다는 우리 눈에 좋아보이거나 다른 사람들 눈에 좋아보이는 곳 또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으로 구별되어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구별되어 보이는 곳에서 구별되어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으로 우리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구별되는 것이다. 모세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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