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9, 2017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누가복음 24:13-35에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미스테리이다.
물론 제자들이 처음에는 자기들이 처한 문제에 골몰하느라 자기들 옆에 와있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예수님이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할(27)" 때에도, 자신들이 강권하여 함께 유하자고 할(29) 때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제자들은 나중에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주셨을 때에서야 예수님을 알아 보았다.

부활의 몸은 현재의 몸과는 질적으로 다른 몸이겠지만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본 경우도 있었던 걸 보면 엠마오로 가는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누가는 이 상황을 제자들의 눈이 가려졌다(16)가 밝아졌다(31)는 말로 묘사하고 있다. 누가조차도 그 이상의 설명을 하지 못할 정도로 미스테리한 상황인 것이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저런 설명들이 있어왔지만 어떤 설명도 만족할 만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부분은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자신을 증거하는 데 쓴 두 가지 방법이다.
하나는 성경 해석이었고,
하나는 떡을 떼어 주는 일이었다.

예수님이 제시한 성경 해석은 당시의 전통적인 메시아관을 옹호하는 해석이 아닌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26)의 해석이었다. 그 당시에는 비주류적 해석이었겠지만 예수님의 삶과 일치하는 성경 해석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기는 했어도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까지는 못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단계가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두 번째 방법은 식사를 할 때 예수님이 떡을 들고 축사를 하고 떼어주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만의 특징적 행동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상적인 식사에서부터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셨을 때나 최후의 만찬에서까지 예수님은 이 모습을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행동을 보고 자기들과 함께 있는 이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아보았다.

그 후 이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을 만난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와해되었던 공동체가 재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세워진 초기 교회는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보여주셨던 방법인 성경 공부와 떡을 떼어 주는 행위를 소중하게 간직했고 교회는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떡을 떼어주는 행위는 단순히 예배시에 성찬식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로 받아들이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주시다가 몸소 떡이 되어 우리를 살리신 분이시다. 그 나눔과 희생이 떡을 떼어 주는 행위 속에 상징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공생애 시절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주셨을 때 그 식탁에 함께한 사람들은 또한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제자들도 있었지만 세리와 창녀, 죄인들도 함께 하지 않았었던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런 이웃들을 품어서 함께 떡을 떼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가르치는데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없다면 상처받고 상한 영혼들이 주님을 만날 곳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교회라는 공동체는 재림 때까지 예수님의 몸으로서 예수님의 몸의 부재를 대신하는 곳이다. 성령님을 통해 내 안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은 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따뜻한 눈 빛이나 애정어린 손길 등을 느낄 수 있는 곳은 교회 밖에 없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으로서 기능할 때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나 세상에서 상처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그곳에 모인 성도들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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