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0, 2015

자기 신앙의 절대화

신앙이 하나님과의 주관적 관계라면 신학은 이러한 관계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신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신앙이라는 주관적 영역에서 벗어나 공적이고 객관적인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신학의 영역에서 자기 신앙은 상대화된다.
예를 들면 내 애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믿던 한 남자가 미인대회에 출전한 그 애인을 지켜보는 경우라 할 수 있는데, 객관적인 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자기 애인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커녕 순위에도 못드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격이다.
자기 신앙이라는 작은 영역에서 경험한 하나님 체험이나 성경 이해가 자기에게는 절대적일 수 있겠지만 신학의 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지난 2천년간의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하나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 객관화 작업을 거치는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잃거나 아니면 신학을 거부하고 자기 체험을 절대화 시키는 쪽으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지금 목사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 어려운 신학 작업을 통해 자기 신앙이 해체되고 재확립되는 과정을 겪어낸 사람들이다.
물론 모든 목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많은 좋은 목사들이 이 과정을 치열하게 겪어내었다고 믿고 있다.
이 과정을 겪어낸 목사들은 성경에 관한 '신앙적' 질문에 '신학적' 답을 요구하는 성도에게 쉽게 답을 주지 못한다.
해는 산에서만 뜬다고 믿는 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도 뜬다고, 아니 더 정확히는 해가 뜨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신학 공부를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려 하지 않고 쉽게 답만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쉽게 답만을 주면 안색이 변한다. "내 애인이 안예쁘다고요?"
그래서 목사는 쉽게 답을 주지 못하고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함께 고민해보자고 하지만 대개의 성도들은 또 그런 목사도 못마땅해 한다.
자기 신앙은 소중하지만 그것을 절대화시켜서 자기 신앙의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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