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30, 2016

일곱살 아이(만 다섯 살)

이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나이를 다 만으로 세기 때문에 내 아이가 다섯살이라는 생각만하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나이셈법으로 계산해보면 내 아이가 벌써 일곱살이다. 아이가 좀 전에 엄마와 자러들어가면서 내 방에 와서 나를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고 갔다. 나는 일곱살 때 내 아빠를 안아주거나 아빠에게 뽀뽀를 해 준 기억이 없다. 내 기억 속에 아빠는 엄한 아버지였고 같이 있으면 그다지 편하지 않은 아빠였다.

자라면서 나는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다행히 내가 마음먹은대로 나는 내 아들에게 좋은 아빠, 같이 있고 싶은 아빠가 되었다. 아이는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엄마와 같이 자러들어가고 절반 정도는 나와 같이 자러들어간다. 간혹 내가 자줘야 하는 날에 일이 있어서 아이게게 "오늘은 엄마랑 잘래?" 라고 하면 화를 내면서 울려고 한다. 엄마만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되지만 아이가 나를 그만큼 좋아해주니 고맙기도 하다.

아이는 오늘처럼 엄마랑 자러들어갈 때는 꼭 나한테 와서 포옹을 해주고 뽀뽀를 해주고 간다. 그런데 그 포옹이 그냥 대충 마지못해 하는 포옹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 깊이 안아주는 진짜 포옹이다. 그게 참 고맙다. 아이한테도 고맙고, 내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얻지 못했던 부자간의 살가움과 따뜻함을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는 것도 고맙다.

이제 2주간의 텀브레이크가 끝나고 다음주 월요일이면 아이는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다. 부끄러움이 많은 것을 보면 영락없이 내 어릴 적 모습과 똑같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부끄러워할 때 절대 아이를 다그치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나도 부끄러움이 많았고 그 때 나를 채근하는 어른들이 싫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앞에 나서는 게 싫은데 왜 어른들은 자꾸 앞에 나가서 뭘하라고 하는지 정말 싫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를 채근하지도 않고 내 아이에게 '사내녀석이 그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서 어쩌냐'고 얘기하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내 아이를 보호해주기도 한다.

나는 아이에게 될 수 있는대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성장하면서 스스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스트레스외에 부모나 사회로부터 부과되는 스트레스는 가급적 겪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아쉽게도 부모 마음이 다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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