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7, 2014

창세기 1장 - 다스림

창세기 1장26-28에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들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특별히 사람이라는 존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그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맡기셨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보고 싶은 점은 다스림의 대상과 그 의미이다.

 다스림의 대상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이 다스려야 할 대상은 사람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만들어졌던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가리킨다. 해와 달과 별, 동식물등을 모두 포함한다. 현재 발전해 있는 각종 분과 학문들을 살펴보면 우주와 지구의 각종 생물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의도대로, 물론 불완전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다스려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유의해야할 점은, 사람은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의도는 그 때까지 만들어진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사람은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존재로서 다같이 평등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본성이 삼위일체이듯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사람들도 서로 같은 존재론적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고 의지하는 관계에 서있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세상은 하나님의 의도에 어긋나는 세상인 것이다. 파라오가 지배하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이상향 가나안에서 만들어가고자 했던 새 세상은 지배-피지배 관계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닌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었다. 기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출애굽의 후손들이 왕을 세우려고 할때 선지자 사무엘은 왕정으로 인해 발생하게될 지배-피지배 관계의 폐해를 우려한다. 심지어 그런 체제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체제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마저 그들의 왕을 뽑고 다른 나라들처럼 지배- 피지배의 관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만다.

 다스림의 의미
 다스린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라다’로서 영어로는 dominion으로 번역될 수 있다. 한국어로 느낌을 표현한다면 짓밟고 깨부수는 의미까지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강한 힘으로 억누르고 컨트롤한다는 의미, 정복한다는 의미이다. 근대화 이후 산업의 발전으로 자연이 파괴되었을때 기독교적 세계관이 그러한 파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비판들이 있었는데, 창세기의 문구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경우 그러한 비판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창세기 기자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 다스림의 대상이었지, 자연이 어머니라거나 우리가 보호해야할 대상이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다스림을 수천년전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다스림의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다스림
 우선 자연물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떤 방식인지는 예수의 공중나는 새에 대한 언급에서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며 새들은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천부께서 기르신다는 표현을 하신다(마6:26). 새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모습은 불도저를 앞세운 자연파괴자의 모습이 아닌 새들에게 물과 모이를 주는 마음씨 착한 사람의 모습에 더 가깝다. 본문에서 기른다는 말은 헬라어 “트레포”로서 좀더 정확히는 먹인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새들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무를 자르고 숲을 파괴하고 새들의 보금자리를 없애는 그런 인간들의 모습과는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 아닌가. 예수는 또한 사람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위에서 충분히 군림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요즘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사이비 교주처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약간의 힘만 있어도 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자신의 말에 복종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예수는 그러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의 친구였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였다. 모두가 평등했다. 그 평등한 관계를 수직적 관계로 전환시켜 지배-피지배 관계로 만드는 세력에 예수는 대항했다.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하고 죄를 덧씌우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항했다. 예수에게 사람은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었다.

 결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구현한 예수를 경험하지 않은 창세기 기자에게 자연은 정복과 다스림의 대상이었을 것이고 자연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물론 대개의 사람들이 자연을 신성시하고 자연물을 신격화하는 시대에 자연을 피조물로 보고 인간의 다스림의 대상으로 파악한 창세기 기자의 선견지명은 분명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진 하나님은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는 정복자라기 보다는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는 자연보호가에 더 가까웠다. 지금은 힘과 폭력을 숭배하는 수천년전의 관점에서 창세기를 읽기 보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새롭게 창세기를 읽어야 할 시대이다. 하나님이 자연을 다스리는 방식은 힘과 폭력이 아닌 사랑과 돌봄이었으며 예수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또한 사람은 애초부터 지배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서로 협력하며 공생하는 존재였음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본래 의도대로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지 않는 세상, 그리고 힘과 폭력이 아닌 사랑과 돌봄으로 자연을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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