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9, 2014

화려함과 소소함

어제 웰링턴시에서 무료로 펼치는 라이트 쇼에 다녀왔다. 먼저 다녀온 키위 친구가 하도 멋지다고 요란을 떨기에 머리속으로 레이저 쇼나 크리스마스 장식 비슷한 화려한 빛의 향연이 펼치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어제 밤에 그곳에 가보니 참 소소하기 그지없는 작품들이었다. 전시물들을 한군데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넓은 지역에 여기저기 설치해 놓아서 맵이 없으면 어디서 전시를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작은 수준의 작품들이었다. 그 작은 전시물들을 보며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다. '아니 이런 보잘 것 없는 전시물을 보자고 이 추운 밤에 시내까지 나왔단 말인가..'

실망감으로 집에 돌아가려하는데, 가만히 다른 사람들을 보니 다들 이 전시물들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는게 아닌가.. 순간 '왜 나는 이 쇼를 즐기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나도 모르게 화려함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이나 미국에서 봤던 화려함에 물들어서 그에 못 미치는 작은 것들에는 아예 그 사이즈만 보고 실망을 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은 작품들이라도 즐겁게 보고 감상해준다면 이를 설치한 예술가들에게는 얼마나 큰 격려가 되겠는가. 한국 같았으면 관객들의 실망과 욕지거리에 주눅이 들어서 이런 작은 수준의 전시물을 설치하지도 않을 것 아닌가. 행사를 주최한 실무자들도 시민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면 이런 작은 사이즈의 행사를 얼마든 부담없이 준비할 수 있을 것이고, 무명의 예술가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터이다.

나에게 이 행사를 소개시켜준 키위 친구는 전 세계를 여행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인데도 이런 소소한 행사가 멋지다고 꼭 가보라고 추천을 해준 것이다. 행사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서도 'Awesome'이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정말 별볼일 없어 보이는 작품들을 보면서도 찬찬히 작품을 관찰하고 즐기며 좋아하는 사람들. 화려함에 길들여져 있는 나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고, 그만큼 나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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